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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꼭 영화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 재미있습니다.
극 전개도 탄탄하고, 반전도 극적이고, 마무리도 깔끔합니다.
굳이 흠 잡을만한 한 두 장면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 높습니다.
물론 시원, 상쾌, 통쾌한 재미는 아닙니다. 긴장의 재미가 있지요.

김혜자씨 연배의 어머니들은 대개 몰입해서 보신다고 합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함께 겪었음직한 에피소드들 앞에서 애틋한 모성애가 자극되는 듯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식 키우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뒤틀려진 사회, 아버지의 부재, 엄마에게만 맡겨진 양육의 짐.
어떻게든 아이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키워야 하니까요.
정글보다 심한 식민과 천민자본주의, 무한 경쟁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에서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자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듯 싶습니다.
용케도 대한민국이 이 정도라도 버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우리 어머니들은 용하신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 뒤켠에 숨겨진 누군가의 책임과 잘못을 드러나게 합니다.
영화 보기보다는 재미없겠지만, 누군가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겠지요?

(이하 스포일러 아주 많습니다~그리고 말투도 바뀝니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 1. 당연히 엄마에게!

김혜자씨가 연기한 엄마. 엄마의 삶은 말할 수 없이 고단했다.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는 그는 한약  재료를 파는 가게의 점원에 불과하다.
그는 그저 한약재로 쓰는 말린 풀을 손작두로 자르며 생계를 유지한다.
때때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무면허 침술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침술사 노릇도 한약재료 가게 주인의 저지로 쉽지 않다.
그는 혼자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부재이다.
생계수단의 제공은 전통적으로 남편이자 아버지에게 주어진 의무이지만,
영화에서 아버지/남편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삶의 고단함은 '도준'이 다섯살때 동반자살을 기도하게 할만큼 가혹했다.
얼마나 힘들면 자식에게 농약을 먹이고, 자기도 같이 농약을 먹고 죽고 싶었겠는가?
그 후유증으로 도준은 지적 능력에 장애가 생기게 된다.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지겠지만, 영화에서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다섯 살 때 농약이다)
삶은 곤궁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지적으로 지진하다.
죽을 수 없다면, 어떻게든 그의 아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가 택한 전략은 아들을 강하게 키우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를 '바보'라 부르면 응징하도록, 그리고 한 대 때리면 두 대로 돌려주도록 끊임없이 세뇌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처럼, 도준은 '바보'라는 소리만 들으면 아무 생각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에게 모욕을 주는 이 단어에 도준은 무조건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어느 누구도 자식이 다른 사람들의 모욕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한 도준에게 세뇌된 이 반응은 급기야 살인을 불러온다.
강자가 조롱할 때 도준은 피해자가 되지만, 약자가 조롱할 때 도준은 살인/폭력자가 된다.

자,  지금 엄마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인간에 대한 배려, 이웃에 대한 사랑, 공동체 의식, 사회적 책임감?
웃기지 말라. 어떻게든 이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아이들을 몰아간다.
그것의 방법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 이기지 못하면 도태된다.
아이가 습득하게 되는 삶의 방식,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오로지 '승리'뿐이다.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산다.

도준이 지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 뒤틀린 아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도준은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 모두를 완전히 잊어버린다.
(언젠가는 생각이 나겠지만... 생각이 나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것들이 떠오르던 것처럼)
'도덕성', '인간성'을 상실하도록 엄마는 도준을 키운 것이다.
도준의 잘못은 순전히 엄마의 잘못이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 2. 개인의 무한책임만을 강조하는 사회!
최근에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시장(市場)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한국인이 직장을 잃게되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화의 90% 이상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죽어라' 시장에서 일해야 살 수 있고, 일 자리를 잃으면 인생도 끝장이 난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직장을 잃어도 다른 경로를 통해 50% 정도의 수입은 유지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
한국 사회는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눠진다.
물론 그 능력은 세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이 소유한 것이 많으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대단히 고통스런 삶을 감내해야 한다.
무능력자. 한국 사회에서 필요없는 존재이다.
영화에서 홀로 된 '엄마'는 제 입에 풀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도준이 다섯 살 무렵 농약을 함께 마시게 된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엄마의 짐을 대신 나누어 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의 짐은 그 만이 질 수 있고, 게다가 '도준'은 더욱 무거운 책임을 엄마에게 떠맡긴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 사회에는 없다.
성장과 분배의 논란이 일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에 손을 든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성장하고 있을 때에도 분배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성장하지 않을 때, 더 고통스럽고, 힘들 때 분배의 문제가 고민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감의 결여는 한 개인의 삶을 경쟁으로만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어느 누구도 함께 해 주지 않는 외롭고 고독한 엄마의 삶을,
고물을 모아 살며 외딴 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삶을,
몸을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여중생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느 누구도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영화에서 엄마는 기억력이 좋아지게 한다는 허벅지 안쪽의 침자리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뒤틀려버린 현대사, 아버지의 부재, 무한 경쟁의 현실을 기억해 내야 한다고 자꾸만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침자리는 은밀하게 숨겨진 곳에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깊은 곳에 잠복해 있다.

젠장,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이 정도라면 행복해하면 되는 걸까?
도준이처럼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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