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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은 일제의 침략 속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하던

중국 공산당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홍천오성기라고 하던가?

붉은 하늘 바탕에 별 다섯개가 그려진 그 국기를 휘날리며 일제의 탄압에 맞서던 중국 공산당.

그들은 일제에 의해, 또 국민당 정권에 의해 엄청난 고문과 박해를 받았다.

그들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독립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은 중국을 점령했다.

중국공산당은 최소한 인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시기에 기독교는 역시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계급적 기반이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하늘에 속한 사람>의 이야기들은 항일 투쟁하던 중국공산당 대신 기독교가,

탄압하던 일제 대신 중국 정부로 대치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주체와 대상만 바뀌었을 뿐 또다시 피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더 중국 인민들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중국공산당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부흥하는 것은 기독교 본래의 사랑이 다시 그 땅을 감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 윈 형제가 피로 쓴 고백이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는다면 그는 스스로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이었다.

사역의 내용과 방향이 조금 달라진다 한들,

그가 어떤 탄압과 고통을 당한다 한들 그에게는 예수님의 사랑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사랑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그가 그만큼 깨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를 들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을 보내셨다.

그들에게 엄청난 비전을 담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비전을 감당하지 못했다.

끝까지 붙들지 못했다.

나의 비전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가?


<책 내용 중에서 발췌>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저 내게 맡겨라. 상황을 보지 말고, 너 자신도 보지 말고,

다른 사람도 보지 말라. 열심히 기도해라. 그러면 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고전 4:9,13)

"주님,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군요." 우리의 힘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것은 곧 패매가 아니고

하나님의 무한한 창고를 여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사역이 우상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보다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 우선시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개입하시기 전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에게

내 상태를 숨기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사역을 계속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 함께 기도하고 ... 성경을 읽었다. ..... 의무감과 타성에 젖은 행동이었다.'

"울지 말라. 내 백성을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해 내가 택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 아니다.

다른 여러 사람들도 명령을 받았지만, 이 비전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다."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마 19:26)

"박해가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는 날라야 할 짐이 가벼워지도록

기도하기보다는 더욱 튼튼하게 견뎌낼 수 있는 동허리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정말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고난과 역경을 몸소 통과함으로써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십자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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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間의 어울림/神學과 信仰  |  2008. 9. 1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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