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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인간의 문제, 그것은 모두가 연루되는 치사한 문제이다<역사의 한 페이지 中>. 이 세상 하늘 아래 인간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연루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고, 이 관계에는 한 두명의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연루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치사한 문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는<본능의 기쁨 中>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가 풀어가는 인간이란 참 딱한 존재이다. 자신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들의 도움을 통해 성장하고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늘상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신만이 유지되고 보존되어야 할 존재라고 여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 속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로맹 가리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엮어가고 있다. 열 여섯 편의 단편들은 제각각 다르고 특징이 뚜렷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파괴적이고 몰인정하고 극단적 이기주의이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로맹 가리는 집을 나선 한 여인의 수모와 몰락을 다루고 있다. 그 여인은 모욕을 감당할 길이 없어 바다로 달려가다가 목숨은 부지하지만, 자신이 당한 모욕으로 끊임없이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한다. 모든 인간들이 그렇다. 끝끝내 죽음을 향해 가면서 생명을 조금씩 연장해 가긴 하지만 실상은 날마다 자신이 받았던 모욕을 되새기거나, 새로운 모욕을 만들어낸다.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이러한 모욕의 메커니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짜>에서 등장하는 인간은 또 어떤가? 고귀한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진위 논쟁이 벌어지다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살아있는 작품(?)이 사실은 위조되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이라는 별로 깨끗하지 못한 존재에게 예술 작품의 진위가 사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가짜는 다 불살라버린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바로 내 옆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살갗을 부딪히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거짓으로 도배되어 있는 가짜인 것을. 이 세상, 인간과 연루된 이 세상에서 참된 가치를 찾으려거든 <가짜>의 주인공처럼 홀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은둔하며 살아갈 것. 

<본능의 기쁨>에서는 난쟁이와 거인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간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이라면 구역질이 나요, 선생님. 정말 정나미가 떨어진다니까요. 그들은 속속들이 흉악해요. …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인간이란 걸 말이요, 선생님, 하하!' 로맹 가리가 느꼈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혐오감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은 난쟁이와 거인이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거나 그들을 구경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지, 난쟁이와 거인도 당연히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있다. '이럴 땐 정말 내가 인간이라는 게 부끄럽다니까.'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은 인간 운명의 어리석음과 운명 자체의 반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벽을 통해 흘러나오는 사랑하는 사람의 신음 소리가 실상은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 때문'에 비소에 중독 되어 죽어 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것도 절망적인 고독이라는 이유로 벽 하나를 두고 하나는 목을 매달고, 하나는 비소를 먹고 죽어 가는 것이 인간 운명의 어리석음이라는 말 말고 다른 어떤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로맹 가리가 일생을 신의 섭리에 맡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더 이상 인간의 더러운 모습들을 관찰할 수 없다는 용기 어린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운명에 매여 사는 인간들. 우리는 노예, 운명은 가혹했다. 언제쯤 인간의 치사한 연루는 막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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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間의 어울림/文學  |  2008. 9. 1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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