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글쎄,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찾는 사람은 이미 가버렸고-그것도 처참하고, 쓸쓸하게-그 사람을 찾기 위해 사진을 내려놓는 다른 사람.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그가 왜 떠나가 버렸는지, 아니 사라져버렸는지..하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알 수 없을터이니 겉도는 술래잡기에 열중할 것밖에는. 이 소설은 예전의 단편인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장편으로 옮긴 것이다. 군데 군데 예전 단편의 내용이 그대로 옮겨져 있고,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 예의 신경숙이 보여주는 문체의 힘은 여전히 강건하고 놀랍다.
미나리 군락지에서 그 어릴 적 박탈의 경험은 이후의 삶 속에서 무의식을 지배하는 바탕이 되었다. 거세 공포증처럼 인간의 무의식 속에 끊임없이 내재된 박탈의 불안감. 어렸을 적 경험과 관련없이 사람은 누구나 그 박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폭발하거나 사라져 버린다. 세상이 받아줄 수 없는 슬픈 존재가 되어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그가 꽃을 돌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늘 물을 머금고, 햇빛을 보게 하고, 정성스럽게 키워내지 않으면 썩어버리는 화초들을 대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과 어떤 연관을 지었을까?
그가 그토록 지향하는 그 남자에게, 그 남자가 보이는 어느 외진 공터에 바이올렛을 심으면서 그녀는 어떤 느낌을 견디어 냈을까? 그에 대한 욕망이 터오를때마다 심어 논 바이올렛. 결국 그를 삼켜버린 포크레인에 의해 역시 삼켜져 버린 욕망과 지향의 대상 바이올렛. 오산이는 강제로 박탈되었고, 떠나게 되었고, 사라지게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붙잡아 주지 않는다. 그가 떠난 곳을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가버린 곳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없다. 부질없이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작은 손짓만이 남겨져 있다. 다시 건져 올린, 삶에 대한 비관.
처음 먹던 녹차처럼 쓰디 쓴 경험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어느 날 한순간 문득 느껴지다가 사라지는 녹차의 단맛과 같은 고단한 삶. 그 삶 속에서 제 감정, 제 느낌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이제는 그 비관을 넘어서게 하는 힘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늘 기사를 쓸때마다 수동형의 문장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늘 늘어지는 만연체의 문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간단히 사람을 주어로 ~했다 라고 마치면 될 것을 ~은 ~을 ~해서 ~되었다 식으로 기사를 쓴다. 그 자신은 이렇게 쓰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 별 문제를 느끼지도 못한다.
우리가 늘상 접하게 되는 영어를 번역한 문체들, 일어의 흔적들, 중국어 말투들에서 벗어난다면 훨씬 더 입맛나는 우리말을 쓸 수 있게 된다. 곧 문장에 힘이 생기고, 생기가 돌고,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생동거리는 느낌을 얻게 된다. 우리문장쓰기를 정독해 보자.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독되어 있는 죽은 말투를 버리고 살아 있는 말투로,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보자.
정호승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1997년 5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죽을 힘도 없을만큼 허덕이고 있을때 내 앞에 나타난 그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때 이 시집이 눈에 띄었다. 뿌리침을 당해 보았는가? 완강하게 거부하며, 잡은 손을 밀쳐내는 그 느낌을 겪어보았는가? 그리고 한마디 통보로 떠나가 버린 사람 탓에 두고 두고 가슴앓이하며 진정하고 있지 못할때, 그는 불현듯 나타났다. 어떻게 해야하나? 손을 내밀어야 하나? 아니면, 또다른 아픔을 감수하기 싫다고, 모른척하고 지나가 버려야 하나??
그 때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머리 속을 뱅뱅거렸다. 그리고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싯구가 입을 맴돌았고, 결국에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이겼다.
이 시집은 그런 힘이 있다. 그래도 배고프면 입을 없애버리라는 과격함이 있다. 그것과 함께 숨죽여야 하고, 눈물지어야 하고, 고개 숙여야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내 마음 속이 담겨져 있다. 서울의 예수에서보다는 덜 처연하지만, 묘한 갈림길에서 눈물짓게 한다.
진정,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하는 것은 내 실존의 또다른 출발을 말하는 암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