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0년 5월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고,
끊어진 경의선이 다시 이어지고,
장기수들은 북송되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모두가 잊혀지기를 원하는 지금.
기어코 지나간 이야기를 끄집어내 다시금 우리 갈길을 재촉한다.
오래된 정원은 어느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있다.
지나가버린 시절이 자신에게 역사의 현장이었든,
한 인간의 실존적 문제로 한없이 흔들리는 시절이었든
오래된 정원은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우리를 부른다.
황석영씨는 이 소설에서 비교적 역사의 현장과 개인의 실존의
문제를 균형있게 그렸다.
후일담 소설들이 가지는 한계들,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끊임없는 회한이 아닌 그 시절을 지금에 다시 살려내는
꿋꿋한 문체가 믿음직스럽다.
갈뫼에서의 만남과 헤어짐,
한윤희의 머나먼 이국땅에서 최후는 사실 같은 의미가 아닐까?
지금 세상은 놀랍게 변화해 가고 있지만,
그리고 예전에 그렇게 목청껏 소리높여 불렀던 목표들이
조금씩 성취되어 간다 해도,
잊거나 잊혀져 버린 나와 그들의 만남은 어찌할 수 없다.
마음 속의 오래된 정원을 찾아가는 일이 내게는
나를 버리는 일이 될 수 있음으로,
오래된 정원을 읽는 내내 후회가 되었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
신경숙 씨는 참으로 탁월하다. 이름을 들을때마다, 그리고 그녀가 책을 낼 때마다 항상 머뭇거리게 된다. 나는 저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내 슬픔들을 헤집어 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길수 없다.
지나가버린 슬픔을 들추어 내는 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생채기를 들추는 것과 다름없다. 몸에 난 상처처럼 흉터만을 남기는 슬픔은 없다.
<딸기밭> 역시 슬픔들의 탐구의 과정이다. 여전히 내면에 머물러 있지 않은 상처들과 탐욕들, 인간 욕망과 삶의 자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돈다. 신경숙 씨는 그래서 탁월하다.
바바라 런던 & 존 업턴 지음, 이준식 옮김 / 미진사 / 2000년 8월
사진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작할 것. 전문적인 교육기관이나 사진을 강의하는 곳에서 배울 수 없어서 서점을 전전긍긍하면서 이 책 저 책을 뒤졌다. 그 비싼 사진 책들 중에 감히 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뭐랄까, 어떤 분야이건 그 분야를 대표하거나 정리하는 책, 대가가 있는데, 바바라 런던이 바로 사진분야에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많은 사진 이론가들과 사진가들이 있지만 바바라처럼 정성들여 사진의 기술과 이론들을 정리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지금 후배에게 가 있지만, 다시 돌려받아야 겠다. 시간이 지나면, 혹시 잊어버릴 수도 있고, 다시 보고싶을때 찾아도 없다면 얼마나 난처할 것인가? 사진을 배우고 싶다면, 맨먼저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