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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연 외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9년 9월

참 재미나게 읽었다. 신약학 학자들이 쓴 책을 재미읽게 읽을 수 있다니. 세 명의 젊은 학자들의 글들은 하나 하나가 감칠 맛이 났다. 이전까지 읽었던 무미건조한 신약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있는 역사적 예수와 바울,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조태연교수가 쓴 예수에 관한 9개의 글들은 예수님이 살았던 당시의 콘텍스트,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직접 체험했을 그 정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 교회를 지배하는 교리에 얽매인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예수, 말씀하시고 계시는 예수, 보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며 형제애를 나누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교리에 얽매인 예수상이 무엇인가? 오로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하나님과 같은 분. 예수님은 성육신 하셔서 우리 곁에 오셨고, 우리와 함께 고난 당하고, 고통 당하시면서 우리가 겪는 실존의 고민들도 함께 하신 분이셨음을 되돌이키고 있다. 2부에서 차정식 교수는 예수님의 복음이 바울에게로 옮겨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예수님이 죽음 앞에서 겪었을 그 숱한 번민과 고뇌를 잘 살려놓았고, 성령의 역사와 바리새적 유대교와 유대교적 그리스도교라는 애매한 차이 앞에 길을 찾아나가는 헬라파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이 점차 신앙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등을 그간의 역사비평적 방법을 이용하여 적절하게 그리고 있다. 

3부에서는 바울의 복음을 다시 되짚어 보고 있다. 바울 그 역시 그가 겪어야 했을 컨텍스트 속에서 최선의 것으로 내놓은 그의 신앙 고백들을 들을 수 있다. 특히 야고보서의 행동을 강조하는 믿음과 바울의 이신칭의가 과연 대립하는 것인지를 다루는 '믿기만 하면 된다구요?'라는 글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명확히 바울이 무엇을 지향하려 했는지를 알게 하는 빼어난 글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이러한 글들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평신도들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더욱 깊은 고민과 감동을 선사해 줄 글들. 세 분 교수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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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間의 어울림/神學과 信仰  |  2008. 9. 1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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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으로 접근한 성서의 인물들이란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성서에 많은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 갈 수 있다는 것은 더욱 깊이 있는 성서 이해를 가져다 준다. 저자인 이나미씨가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이 보다 더 진지한 접근이 가능하게 했을거라 생각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서부터 다양한 느낌들을 받을 수 있었다. 뱀이라는 이미지 속에 담겨진 인간의 지혜 탐구가 죽음에 잇닿아있음을 밝히는 대목에서부터 교회가 제공하는 해석과 다른 관점들을 볼 수 있었다. 

카인은 우리 맘 속에 담겨진 증오심의 원형, 그리고 형제간의 경쟁 심리를, 노아의 옷을 벗고 자는 모습에 나타난 정신 의학적 관점을, 소돔성과 관련해서는 성적 편향성의 고민에 대한 교회의 폭넓은 관심을, 고단했던 지도자 모세에게서는 인생의 과정 속에 담겨진 삶의 의미들을, 3대 바보 중의 하나인 삼손에게서는 미숙한 남성성의 원형을, 에스델에게서는 권력을 절대시 하지 않고 자신의 옷치장을 걸레처럼 더럽게 여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미덕을, 성격적인 약점을 지녔음에도 매력적인 다윗에게서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불행 가운데에서 참된 의미를 찾는 토비트의 가족들, 욥이 겪어야 했던 깊은 고민과 좌절과 고통들, 이방인의 침략 앞에서 죽음 당한 어머니와 7 형제에게서는 믿음의 순수함과 절대성을, 요나이야기 속에서는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성인식의 이야기를, 애가를 통해서는 이름없는 민중의 노랫가락을,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는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마리아와 마르타를 통해서는 일만하는 여자가 아니라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위대한 복음 전파자이지만 인간적인 약점에 시달렸던 바울에게서는 엄하면서 따뜻함을, 유다에게서는 내 안에 담겨 있는 어두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내 곁에 가깝게, 우리보다 먼저 삶을 살았고, 신앙을 고백했던 성서의 인물들.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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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間의 어울림/神學과 信仰  |  2008. 9. 1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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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애증이 느껴진다. 한국 교회의 철없는 믿음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지적들이 제발 허공에 맴돌다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그의 학문적 방법과 내용을 본다면 철저하기는커녕 상업적 냄새 때문에 코를 다 막아야 할 판이다.

두 달여 동안 이 책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진짜 예수는 없더나? 하는 핀잔도 들어가며 읽어 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받았던 느낌은 단순했다. 이 책 역시 우리 교회의 현실을 꼬집고, 한국 교회 현실에 예수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오덕호 교수의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류의 한국 교회 비판서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예수는 없다'는 분명하게 종교 다원주의 입장에 서있다. 예수만이 참된 길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 역시 구원과 진리에 이르는 다른 길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의 배타적이고 비상식적인 신앙과 신학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라면, 시대가 변화하는만큼 신앙의 내용과 방식도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강남 박사는 글로즈토드랜크 목사가 쓴 『기독교의 변혁』에서 변해야 할 10가지 패러다임을 소개한다.

1)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2) 상하구조에서 평등구조로 
3) 저 위에 계신 하나님에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4) 교리 중심주의에서 깨달음 중심주의로 
5) 죄 강조에서 사랑 강조로 
6) 육체 부정에서 육체 긍정으로 
7) 현실 야합에서 예언자적 자세로 
8) 종말론에서 환경론으로 
9) 분열에서 연합으로 
10) 예수님에 관한 종교에서 예수님의 종교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그 뒤의 성경관과 신관, 예수에 대한 생각들에 있어서는 차라리 『기독교의 변혁』이라는 책을 번역만 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만을 소개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 

오강남 박사가 지적한 성경관은 19-20세기의 서구 사회에서 성경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성경이 환경과 문화 속에서 고백되어진 신앙고백서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부족신관은 그 당시의 문화를 포함한다. 지금의 눈으로 읽는다면 부족신은 그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눈으로 본다면 옳다. 우리가 얻을 것은 부족신관 자체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것이 그 당시에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 어떤 의미인지를 찾는 일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종교비교학자의 눈으로 볼 때, 성경은 구시대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는 신앙고백서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가 책 제목으로 내세운 '예수는 없다'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4장 예수는 없다에는 항간의 떠도는 유언비어만이 적시되어 있었다. 동정녀 탄생의 신학적 배경을 찾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었지만, 성경이 누누이 강조하는 성령에 의한 잉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역시 그는 침묵한다. 역사적 예수를 찾기 위해서는 그는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7-80여쪽 분량에 예수님의 성생활이 어떠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만을 담아 놓고 버젓이 예수는 없다는 표제를 붙인 것은 대단한 상업주의이다.

애증..답답한 한국교회의 현실과 신앙을 꼬집고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할 많은 예언자적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나 이 책처럼은 아니길 바란다. 좀더 진지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그려줄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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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間의 어울림/神學과 信仰  |  2008. 9. 1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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