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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1일권=$20, 3일권=$40, 7일권=$60.
유적지 몇 군데에서 입장권 검사를 하더군요.
아예 어떤 분들은 목에 거는 명찰에 입장권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시기도 하구요.

앙코르와트는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지었는지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다만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 2세 때에 30여년간에 걸쳐 건축되었다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추측컨데, 앙코르와트는 신전이자 왕궁이자 왕릉으로 기능하였다.
우선 비슈누 신에게 헌정된 신전이고, 앙코르와트 북쪽에는 왕궁이 있었고,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은 다음에는 이 곳에 장사되었다.

앙코르와트는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앙코르=도시, 왓=사원의 의미이다.

*맨 위 사진은 <앙코르왓 신들의 도시>(앙코르출판사)에서, 아래 사진은 <All About 앙코르유적>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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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닿는 곳/앙코르와트  |  2008. 9. 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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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권, 3일권, 일주일권을 판다..

3일권이나 일주일권이나 하루 가격은 같았던 것 같다.

하루에 0달러씩, 현지인은 무료^^

각 카운터에서 사진까지 찍어준다. 웹캠으로~ 웃으면서 찍으면 좋으련만 타이밍 맞추기가 영~ㅋ

설레는 마음 가득...저 안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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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닿는 곳/앙코르와트  |  2008. 9. 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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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옆 노점상.
오토바이(툭툭)도 고치고 음료수며 쌀국수며 이런 저런 것들도 팔고.
울창한 숲 사이에 사람들.
소박해 보이기도 하고, 여유로와 보이기도 하고.
빨리 유적들을 보고 지나쳐야 하는 나에게 이 풍경은 느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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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앙코르와트 입구.
거대한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현지인들은 여기 앉아 그늘을 즐기고, 여행객들은 멀리 보이는 앙코르와트에 정신을 팔고.
이 자리를 천년은 지켰을 이 나무는 사람들의 분주함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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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그들의 유산으로 살아가고 있군요.
소망하기는 이들이 다시 영광을 재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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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3

앙코르와트의 밤은 일찍 찾아오더군요.
저녁 6시 남짓이면 해가 저물고, 으스름 어둠이 몰려옵니다.
잠깐 저녁 먹은 사이에 훌쩍 밤이 되었습니다.
그 새 벌써 앙코르와트의 탑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얗게, 붉게, 푸르게...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15달러를 지불해야 했지만...)
밤의 피로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이 곳을 달이 비추고 있었겠군요.
이렇게 밝은 빛은 앙코르에게 어색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해도 숨 죽이며 올렸던 탄성이 다시 터집니다.

사진 point.
...아참, 연못 모서리까지 오셔서 찍으세요. 다섯 개 탑이 다 보이는 곳까지 오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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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주간 입장권....3일짜리가 40달러^^ 
                               앞쪽 네모칸에 즉석에서 찍어준 얼굴 사진이 들어갑니다.
                               평생 추억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얼짱각도를 잘 맞추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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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야간 입장권...뒷면 오른쪽에 작게 $15 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  물가에 비한다면 상당히 비싼 입장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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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녀왔다.
휴...희노애락의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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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용칠이]


그날 사형될 3명의 사형수중 마지막 3번째는

[용칠]이 였습니다


용칠이는 당시 가장 전도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천국을 얘기하면 "가 봤습니까?"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압니까?" 라고 약만 올리고 계속 주님 영접하길 거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중 어떻게 마음이 변해서 예수님을 믿어 보겠다고 말했는데

제가 너무 교도관일로 바빠서 차일 피일 미루다 그만 사형집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형집행은 극비사항이고 법무부 장관이 싸인만 하면 바로 결정이 되기 때문에 교도관인 저도 몰랐습니다


다음순서가 용칠이구나 하는 생각이드는 순간 저는 가슴을 치고 후회합니다

그때 할껄, 예수님 믿어보겠다고 할때 그때 성경공부하고 영접시킬껄...

가슴을 치지만 이제와서 어떡합니까?


믿음의 교도관 들을 보내 용칠이를 데려오도록 하고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합니다

"주님 우리 용칠이 예수믿어보기로 한 그 마음 만으로도 천국 보내주시면 안됩니까 그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보고 용칠이 데려가 주십시요!"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드디어 사형장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무술교도관들이 용칠이 팔을 잡고 그 죽음의 계단을 올라오는데 이건 완전 절망입니다

조금전 사형당한 끝까지 주님을 거부한 그 [도사]사형수 보다 더합니다

죽음의 계단을 올라오는데 두려움에 다리가 완전히 풀려서 아예 걷지도 못하고 식물인간처럼 질질 끌려옵니다


단상앞에 내려놓고 절차를 진행하는데 완전히 의식불명입니다 죽음의 공포로 넋이 나가서 입을 벌리고 침까지 질질 흘리는게 이제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름을 물어도 모르고 생년월일, 주소. 본적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못합니다

그런 용칠이를 보며 제 가슴이 무너집니다

"내가 잡았던 용칠이를 뺐겼구나 내가 뺐겼구나!!"


더 이상 절차를 진행할수가 없자 교도소장이 사형집행을 명합니다

올가미 밑으로 끌려가는 용칠이를 보고 이젠 지옥이구나 싶어 제가 달려가서 사형집행 교도관들을 밀쳐내고 용칠이를 안았습니다


"소장님 조금만, 조금만더 시간을 주십시요! 소장님"

제가 하도 사정을 하니까 소장이 시간을 허락합니다

그때 같이 있던 믿음의 교도관 11명이 너나 할것없이 모두 달려나와

용칠이 주위에 둘러앉아 기도를 합니다

뺏앗긴 용칠이를 다시 잡은겁니다

이제 다신 놓치면 안되죠


"주님 우리 용칠이 살려주십시요!!"

"하나님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이대로 지옥가게 내버려 두실겁니까!!"

"용칠이 하나님 영접하게 해주십시요"

"주여~~~!!"

"주여~~~~~!!!"


울며 불며 목이 터져라 기도를 하는데

단상에 있는 소장님 검사들 법무부 직원들 종교 관계자들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만 봅니다

한국의 사형집행장에서 이런 일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10여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이미 완전히 혼이 나가서 숨만쉬고 있지 시체나 다름없습니다


완전히 넋이 나간 용칠이를 붙잡고 이젠 지쳐서 앉아있는데

그때 까지 식물인간 같던 용칠이 오징어처럼 축 늘어져 있던 용칠이가 갑자기 꾸물 꾸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양손을 들더니 갑자기 중얼거립니다

"주여...."


전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하도 옆에서 기도를 하니까 그 소리가 박혀서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헛소린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몇번 "주여, 주여" 하더니 눈을 떠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표정이 점점 밝아집니다


조금전까지 침까지 흘리고 넋이 나간 멍한 표정의 용칠이가 이제는 웃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손을 들고 있던 용칠이 입에서 기가 막힌 소리가 나옵니다

'주님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주님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일어서더니 소장님 앞으로가서 인사를 합니다

"소장님 감사합니다 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만수 무강하셔서 저같은 죄수들 위해 좋은일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은 얼떨결에 일어나서 같이 인사를 합니다

그리곤 그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교도소장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합니다


용칠이가 올가미가 걸린곳으로 돌아오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덩실덩실....

예수믿고 천국가는게 그렇게 좋았나 봅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용칠이를 따라 우리교도관들도 같이 춤을 춥니다

무섭고 떨리는 죽음의 사형장에서 웃고 춤을 출수있는거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용칠이가 저와 교도관들 앞으로 와서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교도관님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때문에 고생 많으셧죠"

이소리에 우리믿음의 교도관이 모두 흐느껴 웁니다 저도울고..


그때 용칠이 손을 잡는데 순간 이상한 체험을 합니다

용칠이 손에서 제 몸속으로 전기같은게 흐르는데 한 1만볼트는 되는거 같았어요

너무 놀라서 용칠이 얼굴을 쳐다보는데 얼마니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시는지 얼굴이 해같이 빛나더라구요

"그래 용칠아 먼저가라 천국에서 만나자 잘가라 용칠아"


이윽고 올가미가 목에 걸리고 얼굴에 흰 두건을 씌우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용칠이가 노래를 부릅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바로 찬송가 364장입니다

교회에 가본적도 없고 찬송가가 뭔지도 모른 용칠이가 찬송을 부르는데 한구절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부르더라구요

나중에 제가 천국에서 용칠이를 만나면 꼭 물어 보고싶습니다 너 그찬송어떻게 알게됬냐고.


그렇게 용칠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주님계신 천국으로 갔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있습니다

죽음의 올가미가 목에 걸린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

.

.

.

전도를 저만 할수 있는게 아니죠

마귀한테 빼았겨 지옥갈뻔한 우리 용칠이 그렇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 천국간것처럼 주님을 모르고 살다가 지옥갈 많은 사람들 우리가 주님품으로 다시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사형집행처럼 우리인생의 죽음도 예고없어 찾아옵니다.


- 박효진 장로님 간증 중에서 -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가복음12장20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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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사랑하며꿈꾸며  |  2008. 7. 2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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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의 여성 이미지 연구


19~20세기 초 페니미즘의 1st wave는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었다. 60년대 2차 wave가 일어나는데 이 때는 전세계적으로 혁명적인 시기였다. 우리나라 4.19나 미국의 반전운동, 히피문화, 페미니즘 운동, 동성애 운동, 인권 운동 등. 기존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남성과 백인, 자본가에 대한 광범위한 도전이 이루어졌다. 제 3세계 탈식민지 운동과 그 밖의 시민권 운동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여성은 여전히 타자이자 주변적이고 종속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접근에 두 접근이 있는데 하나는 자유주의적 접근이다. 이것은 부분적 개선을 쟁취하려는 것이고, 여성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첫 번째 물결의 대부분의 내용에 해당한다. 두 번째 물결은 급진적인 것이고 과학적인 것이었는데,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며 굉장히 투쟁적이었고, 막시즘이나 사회주의 등의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서구에서 이슈 중의 하나는 여성의 sexuality였는데, 특히 낙태권 운동은 내 몸의 권한은 나라는 것을 선언한다. <the Wall>이라는 영화에는 낙태와 관련된 3가지 경우의 여성들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슬로건은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6,70년대 페미니즘의 가장 큰 의의는 일반 여성들의 의식을 바꿨다는 것이다. 의식 고양 운동인데, 여성의 눈으로 본 영화 혹은 일상이 담긴 페미니즘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


70년대 정치적 영역에서 문화 영역으로 옮겨 가면서 1973년부터 페미니즘 영화가 본격화한다. 시네 페미니즘에서 첫 출발은 여성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헐리우드 대중 영화, 장르 영화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Popcorn Venus>, <From Reverence to Rape>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방법론은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사회학적으로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미지가 독립/종속적인지, 긍정/부정적인지를 살핀다. 두 가지 여성상으로 정리가 가능한데, Virgin(성처녀)과 Femme fatale인데, 팜므파탈은 결국 뒤에 처벌을 받게 된다. 최초의 여성 영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가 등장하던 시대만 해도 victorian 시대로 그녀는 계속 소녀의 모습으로만 나와야 했다. 그것은 여성의 sexuality를 나타내는 것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20년대엔 왈가닥이면서도 결혼할 때에는 남자를 위해 자기를 버리는 모습으로, 30년대에는 공항기인데 처세술에 능하고, 여신에 가까운, 성스러운 느낌까지 주는 여성상이 선호되었다. 40년대에는 전쟁터에 나간 남성을 위로하는 여성들이 인기였는데, 이들은 글래머에 금발이어야 했다. 50년대에는 친근하고 평범한 이미지가 선호되었다.

60년대에는 성해방주의가 등장하는데, 4,50년대에 대한 반발로 빈약하고 어린 소년 같은 신체를 지녔지만 반도덕적이고 조숙한 여성이 인기를 누렸다. 70년대에 버디 영화(<내일을 향해 쏴라> 등)의 등장은 여성의 부재를 나타내는데, 주로 여성은 이 때에 방해물로 등장한다. 시대별로 virgin과 팜프파탈이 반복되는데, 이것은 남성들의 성적인 욕망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조금씩 바뀔 뿐이지 대체로 여성들을 부정적으로, 의존적으로,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그린다.

페미니스트 아방가르드 영화는 기존의 영화들이 남성의 시각과 남성적 언어, 미학, 영화 문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서 실험적 작업을 진행한다.

여기에 정신분석학을 도입하는데, 정신분석학은 성정체성의 원인과 성별화의 원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영화 분석과 심리 분석의 친연성도 정신분석학의 도입을 촉발했다. 


로라 멀비는 남녀를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서 접근하였고, 영화에서 남녀의 경계선을 넘는 경우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며, 또한 여성의 쾌락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진다.


1) 엘리자베스 코위1) : 장르적 변동과 성적 동일화

동일화를 고정된 것으로 보는 멀비의 시각을 넘어서려고 한다. <혼수상태>라는 영화를 분석하는데, 이 영화는 앞부분은 탐정 영화로, 뒤는 스릴러로 분류될 수 있다. 장르의 변화는 관객의 변화 곧 동일화의 변화를 가져온다. 저녁에 tv에서 하는 드라마들을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볼 때 일관성 없이 동일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며느리 편 했다가, 시모 편 했다가 왔다 갔다 하는데,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상황과 위치에 따라 동일화의 대상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코마>에서 보면 주로 남성이 맡아왔던 주인공 탐정역을 여주인공이 맡게 되고, 뒤로 가면서는 스릴러로 변하면서 여주인공이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다. 탐정 영화의 서사의 핵심은 과거의 사건에 대한 해설이기 때문에 지식의 정보 배분에서 탐정과 관객이 평등하다. 그러나 스릴러 영화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관객은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모르는 정보 배분의 불평등함이 있을 때 스릴러는 스릴러다워진다.

모성 멜로 드라마(<미워도 다시한번> 등)에서도 동일화의 대상이 달라진다. 남성의 영화보기는 monocular, linear, coherence의 특징을 지닌다. 반면에 여성의 영화보기는 multiple, fluid, contradiction 하다.

모성의 재생산과 관련해서 어떻게 여성, 남성의 정체성이 생기는가를 생각해 보면, 남성은 어머니와 끊임없이 분리 부정해 가는 과정을 거치지만, 여성은 어머니에 대해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해야 하는 성장 과정을 거친다. 대문에 영화 보기에서도 다양한 시선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저글링이 가능하다. 한 위치, 한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인물을 볼 수 있다.


2) 미리엄 한센- 성애적 대상으로서 남성

1920년대 발렌티노라는 남자 배우가 엄청난 인기가 있었는데, 그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2가지 전제를 든다. 하나는 1차 대전 후 전쟁이 가져온 성 역할, gender의 변화인데, 남성 대신 여성이 노동력을 사용해야 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서구에서 소비주의가 본격화되던 때였고, 쇼핑의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계속된 환상을 심어주고 부추김 당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남성 배우가 있었지만 발렌티노가 인기를 얻었던 이유에 대해 이론적 배경을 연구하면서 전통적 영웅상이 아닌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렌티노가 보는 대상이자 보여지는 대상에 놓여 있게 된 것으로 양가성을 지녔음을 밝혀낸다.


◇ 문화 연구의 여성 관객성 연구

문화 연구에서는 audience를 실제 살아 있는 대상, 존재로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1) 스타와 여성 관객들 간의 관계 - 재키 스테이시

기존의 관객성 연구가 영화와 만나는 순간에 집중했다면, 스테이시는 영화를 본 후 집에 돌아와서까지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① 스타의 정체성 - 관객의 정체성 사이의 환상에서 출발

- 몰두와 숭배 : 팬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스타들을 평가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자신과 스타와의 ‘차이’가 낳는 쾌락과 매력의 근원지인 이런 차이에서 결과되는 ‘거리감’을 표현한다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차이를 가로지르고자 하는 욕망, 보다 스타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그 자신의 이상과의 괴리가 정체성의 변화를 열망하게 만든다. 이것은 스타가 한 문화 내에서 여성적인 매력의 이상형을 구현하고, 역할 모델로 읽혀지며, 규범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관객과 스타라는 두 정체성들 간의 변화 가능성, 즈 관객에서 스타로 옮아갈 수 있는 가증성에 대한 환상을 나타낸다. 1

- ‘여성의 권력 속에 존재하는 쾌락’은  관객이 스타의 육체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인격과 행동, 특히 힘과 자신감 그리고 저항에 의해서도 매료당함을 보여준다.

- ‘동일화와 도피주의’는 관객이 일시적이나마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스타가 속한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보여준다. 이는 자아와 이상 간의 경계가 상당히 유동적이라서, 관객의 정체성이 스타나 그녀가 표상하는 인물과 융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② 동일화 외부의 실천 : 영화를 보고난 후

- pretending(가장하기) : 게임임을 알면서 ~하는 척 하기

- resembling(비슷해지기) : 관객과 스타의 유사성 주장, 연결점 확보

- imitating(흉내내기) : 스타처럼 되기 위한 스스로를 변화시킴

- copying(본뜨기) : 스타의 외모를 그대로 따라 하기


(2) 인종과 성차의 결합

<칼라 퍼플>(스티븐 스필버그, 1986)은 페미니즘 정치학과 대중 영화가 주는 쾌락 간에 놓여진 긴장을 보여준다. <칼라 퍼플>은 평범한 여성의 관점에서 진행되며 해피 엔딩으로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여성 관객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동시에 아리스 워커의 원작인 갖고 있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도전과 레즈비어니즘이라는 정치적 문제들을 탈색시킨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해피 엔딩에 안심하게 만드는 ‘모순적인 관람 경험’을 만들어 낸다.

이 영화는 흑인 집단 안에서 다양하게 수용되었다. 흑인 남성은 싫어했지만, 흑인 여성은 좋아했다. 관객의 차이가 성차 말고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원작은 흑인 여성 작가가 썼고, 백인 남성인 스필버그가 감독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흑인 남성은 악하게 그려졌고, 흑인 여성은 고난에 찬 성장 영화로 이해하게 되었다. 관습적으로 흑인 남성은 에디 머피처럼 코믹하고 희화화된, 범죄자이자 섹시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흑인 여성은 뚱뚱한 하녀, 또는 관능적인, 모자라거나 희화화되어서 표현되었다. 흑인 여성의 삶이 제대로 그려진 적이 없다. 토리 모리슨 같은 작가들이 흑인 여성들의 삶을 역사화하며 재현해 간다. <칼라 퍼플>은 흑인 여성들의 삶의 모순과 갈등을 담고 있다. 흑인 여성들의 역사가 그려진다. 어떤 맥락에서 이것이 가능했는가?


Ⅳ. 피학증과 텍스트 분석

- 피학증 : 소도구들은 권력을 상징하는데 권력은 본래 불편하다. 그러나 피학증은 이것을 쾌락으로 바꿔버린다.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이 당하는 위치에서 피학증을 강요받는다고 말하지만, 피학증적인 위치는 종종 특권적인 위치가 되며, 위치가 역전되어 도리어 더 주도적이 될 수도 있음을 주장한다.

포르트 다 게임이 본능적 불쾌를 문화적 쾌학으로 바꿔주는 설명 수단이 된다. 1차 과정이 감정적으로 강렬함 나타낸다면, 2차 과정은 감정적으로 감소하면서 언어적 시도를 하게 되고 본능을 우회적으로 만족시킨다. 이것이 피학증의 원리에 많이 이용된다. 불쾌한 경험을 부인하고 쾌락으로 변화시켜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피학증은 전 외디푸스 단계에 나타나는데, 거울상 단계에서 소외와 분리, 분열이 일어나며, 이것이 더 근본적인것이 된다. 반면 가학증의 원인은 외디푸스적이다. 피학증의 쾌학은 수동성과 종속의 쾌락이다. 결국 쾌락은 그 속에서 주체가 문화적으로 지배되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충동적으로 반복한다. 피학증은 열등하지도 않고, 여성 전유물도 아니며, 남성도 그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기존의 멜로가 여성의 비극에 초점이 있다면 이것이 뒤바뀐 상황에서는 ‘전치’를 통해 쾌락을 누린다.


1) http://www.drama21c.net/video/cinefeminism1.htm 씨네페미니즘을 정리한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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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映像의 울림  |  2008. 7. 2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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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정 [영화 그리고 문화 연구] 서동진.


◇ 심미적 텍스트로서 영화와 영화학 film theory

- 정치적 모더니즘 혹은 기호학, 작가주의는 영화를 어떻게 영화의 ‘텍스트’를 발명했는가?

- 영화 이론의 담론적인 대상으로서 영화의 구성(텍스틀, 영화 담론, 숏과 프레임, 미장센, 편집과 데쿠파주의 특권화)

- 문학적 대상화 영화의 관계(서사로서의 영화, 장르로서의 영화 등, Untimely Text로서의 소설?)

- 사진적 대상과 영화의 관계(사진적 현실과 영화적 현실의 구분, 사진과 영화의 분화/자율화에 관한 신화들)

- 회화적 대상과 영화의 관계(시각적 쾌락과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영화, cf. 정신분석학적인 영화 이론들)


이 강의는 도식적 영화 평론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될 것이다. 이전에 배운 영화 이론들에 대해 메타적 거리두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비평(criticism)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이론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대상을 고정하고 규정하려는 노력이 집단화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를 텍스트나 work로 놓고 비평하는 일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평론가들도 영화 자체를 비평하지는 않는다. 이전의 영화 이론들은 억지가 많았다. 작가라는 개념을 탄생시키기 위해 감독만을 작가로 내세우고, 제작자나 여러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배제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영화의 소비 방식도 변화되어 왔다. 소비 방식의 변화는 영화 평론의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어떤 종류의 영화를 즐기는가에 따라 그의 정체성도 달라진다.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은 자기가 가진 취향을 옹호하려는 한 방식이 되었다.

고전적인 소비방식은 소위 영퀴방 방식으로 영화에 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소유했느냐가 중요했다. 스크린으로 시작해서 키노까지의 흐름이다. 여기에 영화 이론에 의지해서 영화를 보려하는 퇴행적이고 강박적이며 도착적인 태도가 있었다. 이것이 마치 영화보기의 유일한 방편인 것처럼 여겼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에 들어 영화 이론의 위기라고 하는데, 아마도 고다르같은 사람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고다르 시대에는 영화를 작품으로 등극시키고 이것에 대해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방식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몸은 영화를 보는 것에 동조된 기계화된 보기를 하고 있다. 구스 반 산트의 <Jerry>에는 끝없이 뛰기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맷 데이먼이 나와서 사람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2명 와서 앉아서 코 골아서 실망했는데....이 영화는 2-30분 보다가 영화를 안 보고 듣게 된다.


네오 느와르, 포스트 느와르 영화들을 보면 기억의 정치학에 의존한다. 노스탤지어의 개념이 끌려 들어오는데, 그 때는 어떤 시대였는가 하는 것이다. 워커 에반스의 사진들을 보면 그 때의 장면들을 정확하게 재현한다.

영화에서 재현은 단순한 사실의 재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박하사탕>처럼 내면의 변화는 사운드 트랙의 사용에 의해서 나타난다. ‘나 어떻해’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그 시대의 기억을 담고 있다. 파탄해 가고 고문형사가 되어 순임이와 끝났음을 보여줄 때 ‘내일’이라는 노래는 존재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증명해 주는 방식이다.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인정해야 하는데,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노스탤지어의 방식으로 영화가 소비되는 것도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서태지를 상기하는 것은 서태지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보는 것이다. 단서와 실마리로서 기호가 된다.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뿐이다. 영화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것은 비평적 보기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와 영화 외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 모더니즘, 기호학, 작가주의는 영화에서 텍스트를 발명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작품인 텍스트에 한정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영화보기는 아니다.

사회적 실천으로써 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영화는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인 기억, 주체성들을 영화는 어떻게 전유하는가? 어떤 내용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 영화주의는 영화를 심미적 대상으로 간주하려 한다. 문화 연구는 다른 대상으로 보려한다.


◇ 문화연구의 대상으로서 영화 그리고 영화연구 film studies

-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s)으로서 영화(cf. 그래엄 터너, <대중영화의 이해>)

- 영화를 구성하는 사회적 실천은 무엇인가

- 몇가지 예를 들자면

1) 극장, 멀티플렉스라는 근대적인 유흥 장소 vs. 백화점, 아케이드, 쇼핑몰....

2) 보드빌, 매직 쇼, 극장 구경, 관람... cf. 청취로서의 감상과 흥분된 몰입

3) 관객과 보는 이...cf. 스타(덤)와 역할, 연기의 자율성

4) 사회적 기록으로서의 영화, 문화유산...cf. UNESCO. archive, 나윤규 등

5) 문화적 정체성으로서의 영화... cf.  컬트, 퀴어, national cinema

6) 문화적 이벤트로서의 영화...  cf. 칸느, 부산, 베를린, 오스카....

7) 영화 상품... cf. 헐리우드, 발리우드, 충무로....

8) 지각으로서 영화... cf. human-machine system? 기계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도그마?


영화적 자각은 파노라마적 지각이라 할 수 있는데, 한 번에 훑어보는 능력이다. 철도 여행을 하는 동안 창밖의 많은 정보들을 보지만 그것을 다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것처럼 영화에서도 지각에 있어 어떤 능력이 발달해야 한다. 20세기 초에 여자들은 집단적으로 광장 공포증을 일으켰는데, 집 안에만 머물던 여자들이 광장에 나가면서 시선들을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지각 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여성들에게 있어 공적인 시각들을 처리할 수 있는 지각 체계에 한계가 있었다. 영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파노라마적 자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의 변화가 있어왔다. 폴 비릴리오의 <전쟁과 영화> 같은 책은 영화의 지각 방법이 전쟁의 변화와 같이 변화되었다고 본다. 전쟁의 변화가 영화 상영과 제작의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디지털 영화의 전국 배급을 보잉이 만든다는 것이다. 왜 보잉이 영화 배급을 하지?


스타덤의 경우 역시 영화 텍스트와 상관없으며, 스타는 캐릭터와 역시 상관이 없다. 스타 캐스팅은 영화를 구성하는 문화적 제도 중의 하나이다. 스타는 텍스트와 독립되어 있다.

배우들의 연기의 자율성은 이 스타성에 의해 제약되기도 한다. 양조위는 더 이상 다른 배역이 아니라 양조위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배우들이 나이를 먹게 되면 더욱 더 제약 받거나, 아니면 이상하고 웃긴 방식으로 희화화 되어야 한다. 영화의 배역으로 환원되지 못하는, 한 텍스트의 구성 요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스타의 특징이 있다.

또한 왜 영화관은 멀티플렉스화되고 쇼핑몰과 결합할까?


보드빌이나 매직 쇼, 극장 구경과 음악 듣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흥분된 몰입과 청취자로서 감상의 차이가 있다.

사회적 기록으로서 영화, 문화유산으로서 영화로 인식의 변화가 있어왔다. 유네스코는 이제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한다.

소위 national cinema라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영화를 역시 문화적 현상으로써 파악하는 것이다. 로테르담 영화제나 부산영화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national cinema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회고전의 경우 작가의 전기적 소개로써 영화 세계의 변화의 내용들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자체를 해석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준다. 임권택에 대한 정성일의 역할은 무엇일까? 임권택의 작품의 역사를 연구해서 한 감독-저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든 평론가들은 이런 글들을 쓰고 싶어 한다.

영화 상영의 포맷도 변화하고 있는데, 작가의 회고전에서 주제 중심으로 옮아가고 있다.


◇ 다시 영화 이론으로? - 문화 연구와 영화의 새로운 관계

미학적 텍스트 / 사회적 실천

영화와 영화 제도, 정책, 산업


영화 비판으로서 영화? (cf. Godard, Debord?)

지각(perception)의 계급 투쟁? (cf, Eisenstein, Vertov?)

문화 산업 비판? (cf. Adorno?)


다음 주에는 퀴어 영화에 대해....

토드 헤인저의 ‘벨벳 골드마인’과 ‘파 프롬 헤븐’정도 보고 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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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映像의 울림  |  2008. 7. 2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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